바람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_ 대성당 본문
우리나라에서 대한성공회로 알려져 있다. 아주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는 영국식카톨릭이라고 할 수 있다.
탑의 높이는 63m. 건물 내부에 133개의 계단이 있으며 그 계단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다.
교회 안은 그냥 무료로 들어갈 수 있으며, 시간대가 잘맞으면 교회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단, 영어로 설명을 해주어서 영어를 모르는 저로써는 참 답답했다. ^^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역사적 유물과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다.
청명한 하늘이 잘 어울리는 고딕양식의 성공회교회!
혹 뉴질랜드 남섬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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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大韓聖公會,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영국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된 선교단을 조직하여 한국에 도착한 고요한은 의료교육과 문서활동을 통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여 1891년 3월 6일 서울 충무로에 선교본부 부활의 집을 짓고, 5월 17일에는 낙동성당을 축성하였다. 1893년 강화도 선교를 시작하였고 1910년대에는 경기·충청·황해도 등지에 교회를 세웠다. 초기 선교에서는 1891년 인천 성누가병원, 서울 성마태병원, 진천 애인병원, 여주병원처럼 전국 규모의 병원을 개설하는 등 의료활동이 두드러졌으나, 1940년 일제의 기독교 탄압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출판 및 문화사업으로 인쇄소를 설립하여 서양문화를 보급하였으며, 1891년에는 우리나라 두번째 영한사전과 신앙관계서적을 발간하였다. 제2대 주교인 단(端) 주교는 《종고성교회월보(宗古聖敎會月報)》(종고성교회는 대한성공회의 옛 명칭)를 창간하고 전국에 진명학교(進明學敎)를 세웠다.
제3대 주교 조(趙)마가는 1911년 교구장(敎區長)이 되어 대한성공회의 체제를 갖추고, 서울 정동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건립하는 한편 선교정책을 확립하였다. 1914년 4월 30일 성직자양성기관인 성미가엘신학원을 세웠으며, 191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 김희준(金熙俊)이 서품을 받았다. 1931년에 서품된 제4대 주교 구(具)세실은 북한지역선교에 주력하여 평양·해주·진남포·연백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1931년에는 일제의 억압정책으로 부설학교가 문을 닫았고 1936년부터는 성직자가 연행되거나 감시를 받았다. 6·25전쟁중에는 한국인 성직자 3명, 영국인 성직자 2명, 수녀 1명이 처형되고, 주교 구세실은 모스크바까지 납치되었다가 1953년 포로교환 때 풀려났다.
1955년 서품을 받은 제5대 주교 김요한(Daly,J.)은 다른 교파와의 대화, 사회참여 및 산업선교활동에 주력하고 강원도 황지(黃池) 탄광촌에 한국 최초로 산업학교를 세웠다. 1965년 이천환(李天煥)이 첫 한국인 주교가 되었으며, 교구가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나뉘었다. 1974년 대전교구는 다시 대전교구와 부산교구로 나뉘었고, 이 중 대전교구는 1993년 4월 자치관구로 독립하였다. 신·구교의 중간 입장에서 교회일치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도하고 있다. 부설기관으로 성직자 양성기관인 천신신학교(天神神學校)와 성가수녀회(聖架修女會), 성공회출판부 등이 있으며, 2001년 현재 교회수 117개, 신부수 212명, 신도수 6만 3973명이다. 본부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번지에 있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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