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어머니... 본문
낡은 사진 한 장을 찾았다. 어머니와 함께 찍은 이 낡디 낡은 사진은 흘러온 세월만큼이나 빛이 바래 있었고, 여기 저기 터진 상처만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일깨워준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한 표정들... 헤어진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넘겨야 했던 어머니의 절박함이 만들어 낸 이 사진 한 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동생과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은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생각해보면 이 사진은 모진 시절을 살아온 어머니에게는 행복한 가족의 단란함이 아닌 가슴 후벼 파는 아픈 기억이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히고 근처 사진관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이별도 서러웠을 터인데 이것이 자식과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임을 알았을 때 어머니의 가슴은 또 얼마나 찢어졌을까? 세월이 흐르면 가슴 아픈 지난 일들도 추억이 된다는데... 평생을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살아온 그 아픔은 내가 다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유난히도 흥이 많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아픈 기억을 달래기 위한 과장된 몸짓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젊은 시절 동네 어르신들께서‘저 녀석, 공부 제대로 가르쳤으면 장관도 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실 정도였으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젊은 날 서울로 와 시다로, 미싱공으로 일하셨다. 좋은 재혼자리가 들어와도 어머니는 마다하셨다. 오직 하나 남은 자식을 위해 그 고된 노동을 묵묵히 해내셨다.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고, 한번 살다가는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고 나를 뒷바라지 해주셨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의 손에 초등학교 교과서가 쥐어져 있었다. 평생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었는지 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하시더니 모르는 것이 있다며 내게 물어보셨다. ‘엄마는 이런 것도 몰라’하며 짜증내던 나에게‘대학까지 공부시켜 놨더니 엄마를 무시 하느냐’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시던 어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심하기만 했던 내 자신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 미안함이 그 한스러움이 또 다른 내 어머니들이 있는 야학으로 나를 인도했는지도 모르겠다.
포토샵으로 낡은 사진의 상처를 지워본다. 하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한 사진이 되었다. 가슴 아픈 기억들도 이처럼 지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어머니의 한도 그렇게 지워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이도 좋은 배필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자식에 대한 무거운 짐을 이제는 조금 벗어놓으신 걸까? 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난 아직도 여전히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못할 일을 삶을 핑계로 여전히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