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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 같은 사람보다도 농민의 딸이 훨씬 아름답다 - 빈센트 반 고흐 본문
<빈센트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작 캔버스에 유채 81.5 x 114.5cm>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 ~ 1890년/네덜란드)
죽어서 이처럼 신화가 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세계적인 경매에서 그의 그림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그와 관련한 수많은 서적들이 발간되었으며 수많은 예술가와 일반인들이 그를 사랑한다. 지금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와 사랑을 세기를 넘어 누리고 있는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예술가(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흐와 같은 예술가가 되길 꿈꾼다. 한 세상을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살다 간 화가! 그러나 그의 삶은 비참했고 그의 죽음은 외로웠다.
1853년에 태어나 권총으로 자살한 1890까지 37년의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 그였지만 그는 세기를 넘어 살아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마음속에 깊이 살아 숨쉬고 있다. 37세의 짧은 삶도 삶이지만 그의 정신적이자 경제적인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의 권유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접어든 것이 1980년대이니 화가로 그의 삶은 더욱 짧기만 했다. 정규미술 교육을 받은 것이 1985~86년 정도이니 전문화가로서의 삶은 겨우 5~6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화가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남긴 일천여점의 작품은 대부분 그가 죽기 10여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야 말로 불꽃처럼 살다 간 것이다.
그의 불행했던 삶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아니면 난 그런 삶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한 절망에서였을까?
고흐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나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19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일하면서 고용주들의 착취를 받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걱정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 예를 들면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그런 그림들이다. 그리고 그날 나의 발길을 멈춰 세운 곳, 그리고 한참을 멍하게 서있게 만든 곳은 초창기 고흐의 목탄화와 스케치들이 있는 곳이었음을 한참 뒤에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부박한 내 지적수준과 감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리라)
예술가는 한 시대의 마지막을 사는 사람이다. 한 사회의 역사, 문화, 철학, 과학 등이 절정에 이르고 그것을 양식으로 충분히 흡수하여 총체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기도 하다. 고흐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이다. 인상주의 화풍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빛이다. 빛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화가들의 작업실을 어두침침한 화실에서 활기 발랄하고 역동적인 야외로 이동시켰다. 또한 당시 과학의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이른바 이동이 가능한 튜브물감의 개발, 빛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 그것이다. 화실의 이동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며 곧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의미한다. 암흑의 중세에서 빛의 근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흐는 빛을 넘어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잉태한다.
그러나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표현주의의 선구적인 화가이기 전에 쥘 브르통과 장 프랑수아 밀레처럼 노동자 계급을 그의 화폭에 담아내고 싶어했다. 땅에서 땀 흘리며 노동하는 농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화가이기도 하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 스스로 이 그림을 자신의 첫 '작품'이며 이전 그림들은 모두 '습작'이라고 할 정도로 짙은 애정을 보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관련해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고흐가 진정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시절 광산촌에서 비참했던 노동자들의 삶과 함께했던 그의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테오에게
나는 램프등 밑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를 드는 것과 같은 그 손으로 대지를 팠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곧 이 그림은 '손과 그 노동'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스스로의 양식을 구했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우리들 문명화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법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따라서 누구나 다 갑자기 이 그림을 좋아해 주기 바란다던가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이 그림이야 말로 진정한 농민화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리라. 나는 귀부인 같은 사람보다도 농민의 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지투성이이고 누덕누덕 기운 자리 투성이인 푸른 치마를 입은 농민의 딸이. -1885. 04. 30-
어찌되었건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흐가 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고흐와 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열정적인 삶과 성찰, 부단한 세상과의 소통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고흐와 같은 불꽃과 같은 삶의 열정이 없고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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