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지역통화! 공동체를 살리는 희망의 돈? 본문
지역통화가 곧 공동체를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도전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전은 때로는 우리를 좌절하게도 할 것이며, 아주 운이 좋게도 ‘그래 해보자’라는 우리의 도전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그다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통화는 파괴되어가는 우리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매개로서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자 합니다. 일을 마친 두 사람은 함께 전철을 타고 그날 있었던 지역통화 운영위원회의 회의를 소회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동료에게 묻습니다.
A : “과연 지역통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B : “그렇게 묻는 A는 지역통화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A : “저는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B : “그런가요?”…
“전 성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담당자에게 그런 확신이 없다면
지역통화는 실패하고 말겠지요. 담당자마저 확신하지 못하는 지역통화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은 지역통화 운영위원이었고 한 사람은 지역통화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자였습니다. 이 실무자가 지역통화 사업을 담당하는 기간 동안 300여명의 회원이 지역통화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지역통화학교, 지역통화장터(매월 1회/토요일), 지역통화 가맹점 5곳 확보하였으며 학습동아리와 지역통화를 연계하면서 ‘지역통화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22개의 기관 단체들의 지역통화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여러 곳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지역통화는 분명히 놀라운 발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듯 지역통화 역시 근본은 지역통화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 우리는 지역통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세계경제의 95%는 투기성 자금이고 우리와 밀접한 실물경제의 규모는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은 대물림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미 2:8의 사회로 진입하였으며, 땅과 부의 소유는 상위 5%에 불과한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으며 IMF이후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극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도 현재로서는 안개 속입니다. 환율의 급등하고 있으며 최근 유가는 진정 조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증시는 추락하고 실업문제도 최악의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수많은 공동체를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가히 위기를 넘어 이제 이미 문제의 상황 속으로 진입한 듯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사실 지역통화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지역통화의 이념을 담고 있는 선례는 무수히 많이 존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삼천여 곳에서 지역통화를 실험하고 있으며(물론 무수한 발생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치면서)이러한 선례 중 상당수가 경제적 침체기나 불황기에 번성하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평생학습운동을 하면서 지역통화를 교육과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습공동체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동시에 예전과 같은 자원봉사의 패러다임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그때 지역통화는 교육공동체를 꾸리기에 아주 적합한 시스템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모든 것에 허리띠를 조르면서도 유일하게 늘고 있는 사교육비! 이제 교육개혁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성장해버린 사교육 시장은 개혁과 동시에 경제파탄이라는 멍에를 안게 될지도 모릅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평생교육은 매우 중요한 기제입니다. 그 안에 교육과 복지, 문화가 서로 융합하면서 지역사회를 역동적으로 활성화하고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백화점의 문화센터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통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교육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활동했던 공간이 평생교육 분야이었기에 그렇지만 적어도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어떠한 공간에서든 지역통화의 활용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습니다.
성장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익숙한 성장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혹 이 책을 접하신 분들도 이미 계시겠지만 언급하여 보고자 합니다. 사우스마운틴사는 미국의 작은 건축회사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는 지역회사입니다. 사우스마운틴사는 8가지 회사운영 철학 중 하나를 살펴보면 그들이 성장에 대한 남다른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이들은 기존의 성장방식에 대한 불문율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성장(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닌 성장의 결과를 생각하는 성장입니다. 지역통화 역시 성장에 대한 개념 전환을 요구합니다. 대를 이어서도 가능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느냐 아니면 그 이전에 소멸되는 운명에 처하는 기업을 만드느냐(설령 기업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들을 다 파괴시키면서 유지되는 기업이라면 그 결과는?) 그 갈림길에서 사우스마운틴사는 아주 공공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더 많이 성장하는가가 아닌 얼마나 적절하게 성장하는가’
경쟁이냐, 협력이냐?
현대사회는 경쟁의 신화 속에 빠져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 까지 우리는 무지막지한 경쟁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쟁은 성장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체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은 생산성을 향상시킴은 물론 자기발전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논리는 그럴 듯 해보입니다. 오히려 경쟁을 넘어 승자독식의 체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연구결과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경쟁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확인시켜줍니다.
교육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알피 콘은 경쟁을 넘어서: 경쟁에 맞선 사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존슨과 로저 존슨 등은 1981년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분석한 메타 분석서에서 1924년부터 1980년까지 이루어진 122개의 연구결과를 분석해본 결과 놀라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중 65개의 연구에서 협동이 경쟁보다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동기가 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모든 분야, 모든 연령대의 집단에서 경쟁보다 협동이 우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얼 리가 말했듯이 경쟁은 쉽게 눈에 띄는 반면 협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기물떼새는 천적으로부터 다른 새들을 보호한다. 아프리카 원숭이인 비비와 영양인 가젤은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서로 돕는다. 챔팬지는 무리지어 사냥하며 포획물을 나눈다. 펠리컨 역시 무리지어 먹이를 찾는다. 사실 식물이 만들어 내는 산소와 동물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 역시 협력에 근거한 상호 작용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자연세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법칙 중 하나는 협동의 법칙입니다. 자연은 경쟁보다는 협동의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선택은 경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종 뿐 만 아니라 같은 종의 개체가 반드시 필요하며 타자와의 대립보다는 협동이 더 효과적입니다. 동물들도 극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서로 협력합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요소이며 우리는 선험적으로 협동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생존의 전략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경영서는 팀워크와 협동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적인 경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공정하지도 못할뿐더러 비생산적이며 성과급과 작업량의 평가는 팀워크와 협력을 근본적으로 저해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 참혹스럽기 그지없는 경쟁의 이데올로기와 승자독식의 체제로 몰아낸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
모두들 알고 있듯 돈의 최초 발생은 가치의 교환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돈은 가치의 교환수단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화폐는 자기증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폐자체가 투자의 개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러한 확장은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 투기자본의 확대, 환율의 문제, 부의 독식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들입니다. 여기에 경쟁의 이데올로기와 승자독식 체제가 맞물리면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은 이미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환의 수단에 충실하면서 이러한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돈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요? 다행이도 우리는 그 해법을 지역통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표는 법정통화와 지역통화를 비교한 것입니다.
돈에 대한 관점
법정화폐 지역통화
부족성 항상 부족을 느낌 언제나 발행가능(부족함이 없음)
탐욕성 탐욕의 대상(이자/투자) 이자가 없음(탐욕의 대상이 되지 않음)
유 출 경제공황 야기(역외펀드/자본유출) 지역 안에서 만 사용(유출우려가 없음)
거래상의 이익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해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
중심축 투자와 이익/선물경제 호혜의 정신
법정통화의 문제
- 이자의 발생
- 사용가치를 넘어선 투기자본
- 지역공동체의 파괴
지역통화의 정의
- 한정된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통화
- 이자가 붙지 않는 돈
- 지역공동체를 구축
지역통화의 특징
- 회원제 ; 한정된 지역 안에서 회원들만 사용
- 무이자 화폐
- 참가자가 필요한 만큼 자발적으로 발행
- 자율분산형 네트워크
- 지역화폐는 권력생사나 지배의 수단이 되지 못함
- 경제적으로는 신용화폐, 윤리적으로는 신뢰화폐
노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
“노동이 모든 부의 근원일진대, 일할 수 있고 일을 하고자 갈망하기도 하는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왜 굶어 죽어가도록 방치되고 있는가?” - 사회개혁가, 포버트 오웬
돌봄의 노동 : 집안 일 하기, 자녀 양육, 노인 봉양 등
지역사회를 위한 노동 : 시민사회 참여활동, 민주주의 실천 활동 등
사회 정의를 위한 노동 :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 등
환경과 생태를 위한 노동 : 환경 보호 활동, 지구의 생명체 존속을 위한 활동 등
인류 역사상 이러한 종류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성장이나 발전, 번영 등에 관해서 말할 때 그들로부터 전혀 들을 수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이러한 류 노동은 인류의 생존에 있어 아주 필수적인 활동들입니다. 이러한 노동이 없는 인류의 생존을 상상하실 수 있으십니까?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가장 핵심적인 노동의 가치를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소외시키고 말았습니다. 에드가 칸은 이러한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활동들을 주춧경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주춧돌이 부실하면 건물 자체가 붕괴되듯 주춧경제의 붕괴는 곧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위의 노동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계신 일들입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여러분의 일은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습니까? 그에 따른 댓가 역시 온당합니까?
‘나는 밖에서 뼈가 빠지도록 일하고 왔는데 당신은 집안에서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가끔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래서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이 말은 우리의 노동에 대한 왜곡된 가치들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상상해봅시다. 만약 부인이 파업을 한다면 가정은 어떻게 될까요?
지역통화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문제해결 작동기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것은 지역통화 운동을 해온 경험들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역통화는 시장주의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산(Assets) : 우리 사회의 진정한 자산은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builder)도,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사람(contributor)도 될 수 있다.
노동의 새로운 정의(Redefining Work) : 노동은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하고, 가정을 보존하며, 안전하고 활기찬 이웃공동체를 건설하고, 노약자를 돌보며, 불의를 개선하고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호혜성(Reciprocity) : 도움을 주는 행위는 그것이‘쌍방형’일 때 가장 강력해진다. 남을 돕는 행위가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를 낳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호혜성’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필요해!” 라는 표현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 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 “어느 누구도 고립된 섬처럼 버려져 있어서는 안 된다.”비형식적인 지원체제나 확대 가족, 사회적 관계망 등은 신뢰와 호혜, 그리고 시민참여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시장에서 그 본래적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력들의 참 가치를 우리들이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할 때, 정말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타임달러의 성공적인 사례들입니다. 비록 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서장애 자녀를 둔 가정끼리 서로 돕는다. 그리고 특히 정서장애를 가진 자녀에게 다른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그러한 봉사활동을 통해서 오히려 정서장애 치료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원봉사를 통해서 정서장애 자녀와 가족이 함께‘장애 치료 행위의 공동 생산자(co-producers of recovery)’가 됨으로써, 그전에는 장애 자녀가 치료를 위해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곤 하던 것을 이제는 가족과 떨어질 필요도 없이 자기 동네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특히 장애 자녀의 정서적, 지적 발달에 큰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타임달러(Time Dollar)’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인들은 식사준비, 장보기, 일상화된 집안 일, 돈 관리, 빨래, 여행, 약 챙겨 먹기, 산보, 특히‘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가사일 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상태의 다른 노인들을 돕고 있다.
▶ 교도소 수감자 중에서‘시간은행제’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중고 자전거를 수선하면서 번‘타임달러’를 가족에게 보내서 가족들이 지역 이웃들로부터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타임달러’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교도소에 가 있었을 한 청소년은 지금 다른 청소년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청소년 문화시설 보수하는 일 돕기, 소방서 화재예방교육 돕기, 기금 모금 캠페인 돕기, ‘장애아동과 빈곤아동 지원을 위한 대안교육 프로그램(wrap-around program)’에 참여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안내 교육프로그램 짜기 등 봉사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면서‘타임달러’를 벌고 있다.
▶‘시간은행제’프로그램은 이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청소년과 노인,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다리’역할을 해주고, 장애인들이 자기 가족과 이웃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 노인 환자들 중에서‘시간은행제’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노인 환자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봉사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퇴원 후 재입원 비율이 매우 낮아졌으며, 특히 요양시설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 초등학교 1, 2학년 후배들의 숙제를 도와주면서‘타임달러’를 버는 5, 6학년 초등학생들의 경우에는 그러한 봉사활동이 학업성취도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 학교 출석률도 좋고, 학교폭력이나 비행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전과가 있는 십대들 중에서 초범의 경우, 청소년 법정에서‘타임달러’를 받고 봉사를 하게 하면 재범 가능성이 현격하게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임달러’프로그램은 이전에는 한 번도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남을 돕는 일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타임달러’프로그램을 통해서 이전에는 단지 다른 사람이 주는 서비스를 소비만 하는‘소비자(customer)’에서 자신도 남을 돕는 서비스를 생산하는‘공동 생산자(co-producer)’가 되면,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할 때면 늘 나타나는‘도중하차’,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 그리고 이러저러한 마찰 등의 문제가 나타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이 쯤 되면 지역통화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된 것처럼 느껴지실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역통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얻은 성과는 절반 아니 그 이하의 성과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통화라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아니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의식을 규정짓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너무도 요원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피터 노스의 말처럼 언제까지 어둠만을 탓할 수만은 없겠지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조그만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어둠을 탓하고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 피터 노스, 레츠 작가 겸 연구원
지역통화는 어떻게 지역사회를 공동체로 묶어내는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통화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강화시키는 돈이라 하였습니다. 과연 어떤 면에서 그런 것일까요? 먼저 기존의 화폐의 일생을 살펴봅시다. 처음 발행되고 소멸되기까지 이 돈은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은행과 인터넷 뱅킹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은 더욱 더 단절되고 맙니다. 사실 얼마 전 이사를 위해 전세계약을 하면서도 저는 집주인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수 천 만원의 돈이 거래됨에도 불구하고 집주인과 우리의 거래는 통장에 서로의 금액과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화폐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래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지역통화와는 아주 구별되는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지역통화가 되던 간에 지역통화의 거래는 관계를 중심으로 합니다. 서로의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 거래는 성사될 수 없습니다. 지역통화가 신뢰의 화폐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지역통화를 통해 서비스를 교환하는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먼저 우리는 상호 서비스의 교환을 위해 상대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어떠한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 나에게 소용되는 것인지를 파악하여야 합니다. 상대를 알지 못하면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역통화의 중요한 원리 중에 하나인 개방성의 원리에 기초합니다. 다음으로는 그와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장소, 거래의 가치를 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래의 가치를 상호 협의 하에 조정한다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는 단지 천원의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통화를 발행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거래가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상호 거래의 결과는 사무국에 통보되며 기록되어 집니다. 이러한 기록은 법정화폐의 기록과는 차별이 됩니다. 단지 돈의 들고남의 기록이 아닌 지역통화 공동체의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기록이며, 관계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지역통화 통장의 거래내역을 살펴봅시다. 누구와 어떠한 서비스를 얼마의 가치로 거래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때의 거래를 기억하고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통화의 거래과정은 철저하게 개방성과 상호신뢰에 기초합니다. 이것은 언뜻 개인과 개인과의 거래같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공동체와의 거래입니다.
여기에서 사우스마운틴사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고자 합니다.
사우스마운틴사의 계약서는 단 3장이라고 합니다. 이 계약서로 사우스마운틴사는 25년 동안 400만 달러 규모의 건축을 성사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우리의 삶의 패턴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사우스마운틴사가 수주한 어떤 부부의 집 건축계약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합니다.
‘우리는(사우스마운틴사) 계약서의 의미를 설명하고 계약서를 그들에게 넘겼다. 계약서를 먼저 받아본 아내는 즉시 계약서의 마지막페이지를 넘기더니 서명을 하고 남편에게 계약서를 넘겼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도 서명해요.“ 남편은 의아한 눈초리로 물었다. ”안 읽어봐요?“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물론 읽어봐야죠. 나중에요. 바꾸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존(사우스마운틴사 오너 중 한사람)에게 전화해서 바꾸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서명해요.“ 그러자 남편도 서명했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사우스마운틴사의 또 다른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계약을 맺는 목적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만남을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능한 사람들만을 상대로 일합니다.”
이미 우리사회에 이러한 신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지역통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원리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지역통화는 이러한 신뢰를 쌓아가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날로 척박해지는 현대의 도시생활은 사람과 사람의 단절, 소외를 부산물로 남겨놓았습니다. 일상화된 인간소외의 현장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지역통화를 통해서 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신뢰와 관계를 형성하는 착한 돈! 교환의 가치에 충실한 돈! 그것이 바로 지역통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너선 코롤(렛츠 저자)은 지역통화를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지역통화를 저해하는 도전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역통화 만이 공동체성을 구현하는데 유일한 해결책 일 수 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통화는 매력적인 도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워진 도전을 감당할 수 만 있다면 지역통화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하나, 지역통화 이념에 대한 불신
- 이것은 과연 그것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둘, 부채에 대한 두려움
- 혹시라도 마이너스 계정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공동체에서 소외되지는 않는 것일까?
셋, 거래의 여건을 조성하는 일
-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넷, 신규 회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일
- 지역통화를 이해시키고 그들을 기꺼이 이 공동체에 동참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 확보해야 되는가?
다섯, 교역지역이 너무나 넓지는 않은가?
-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굳이 그 먼 곳까지 가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여섯, 이용 가능한 서비스와 재화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 법정통화로 이용 가능한 영역까지도 서비스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 더!
사무국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 사무국 운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법정통화가 필요한데!
결국 지역통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자본과의 싸움,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이 근원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 익숙한 삶의 방식과 의식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어렵고 힘겨운 도전이기도 합니다.
지역통화의 가능성 살펴보기
2004년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는 지역통화를 주제로 평생학습축제를 개최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지역통화 사업 추진에 앞서 시민들에게 지역통화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홍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일간의 축제는 철저하게 지역통화를 매개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체험프로그램은 지역통화로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화 하였습니다. 약 2만 여명이 참여한 이 축제의 참가자들은 지역통화 통장을 개설하였고 각 부스는 지역통화 거래시스템에 의하여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자신의 통장이 (-)로 쌓여가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린 듯 합니다. 많이 어린이들이 축제사무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계정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마치 지역통화의 거래를 놀이와도 같이 생각했던 듯 합니다. 축제사무국은 잠시 회의를 거쳐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봉투에 가득 쓰레기를 담아오면 (+)계정을 주기로 한 것 입니다. 그날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더 이상 남아서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역통화의 가능성이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기에는 사실 의아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 가능성의 사례치고는 참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이 날 어른들은 그 누구도 사무국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저 체험프로그램만 하고 가면 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역통화가 따분하고 힘든 것이 아닌 놀이와도 같은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갚고자 했습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탓일까요? 어찌되었건 이날 아이들이 안겨준 것은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성공의 경험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기존의 화폐경제(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비인간화와 공동체와 환경의 파괴 등은 이제 우리 삶의 곳 곳에서 위험 전조를 알리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IMF이후 더욱 삶의 존립자체를 뒤흔들어 버릴 만큼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극악한 경쟁체제는 중소기업과 중산층을 붕괴시켜 버리고 수많은 실업자와 노숙인을 양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양극화는 더욱 극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이는 단순히 유가를 올리는 문제가 아닌 우리의 먹거리까지도 위협하게 되는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장의 논리로만 치달아 온 지금의 경제체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지역통화는 기존 경제체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지역통화는 기존의 돈에 대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전 세계 3천여 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지역통화의 성과는 우리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지역통화는 쉽게 말해 호혜성에 입각한 상호부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혹은 우리의 전통으로 말하자면 품앗이와도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통화의 근본정신은 공동체성을 살리고자 하는 운동이며 동시에 환경을 살리고자 하는 환경운동이라는 점입니다. 지역통화는 신뢰와 개방성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공동체의 속성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지역통화라는 실험은 아직 많은 어려움 속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역통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오해. 아직까지 익숙해 있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습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하는 실물화폐의 조달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지역통화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통화는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면서 자기성장의 과정을 밟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시스템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지역통화가 성장한 곳은 반드시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뢰와 헌신, 열정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됩니다. 그 속에 공동체의 희망이 존재합니다.
다시 처음 두 사람의 대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추천하는 도서와 자료집
1.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 렛츠
2.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작은 회사 사우스마운틴이야기
3.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4. 지역통화기초입문
5. 일본지역통화연수보고서
6. 제4회 전국평생학습축제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 미래를 향한 약속, 사람중심의 평생학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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