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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사회의 도래와 문화예술교육(3) 본문
평생학습사회의 도래와 문화예술교육(3)
1-2. 문화예술교육 이해
더 큰 문제는 문화교육의 개념도 평생교육의 그것 못지않게 광범위하다는데 있다. 일찍이 슈프랑거는 “교육은 문화번식”이라 주장했는데(김정환: 1998) 이러한 표현은 한마디로 앞 세대가 창조한 문화를 다음 세대에 체득하도록 하는 작용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문화적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문화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환기 시켜서 좀 더 높은 문화를 창조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특히 슈프랑거는 문화를 정신적 도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격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의 정신이 담긴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주장했다.
심광현(2002)은 문화교육을 ‘예체능교육’에 국한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지식/인성/예체능교육’이 역동적으로 활성화되는 복합적 교육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화란 신체적, 감성적, 윤리적, 지적 복합체로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어 전승되는 ‘삶의 방식’이며 ‘인간학적 잠재력의 총제’를 구현하는 것이기에 문화교육 역시 이와 같은 특성과 어떤 방식으로든 결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영국의 교육부가 수주한 연구보고서 <우리의 모든 미래: 창조성, 문화 그리고 교육>에서는 문화교육에 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DfEE: 1999)
(1) 학습자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문화적 가정(假定)과 가치를 인식, 탐색,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
(2) 다른 문화에 대한 태도와 가치, 전통 등에 접촉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도록 만드는 교육
(3) 현재와 같은 문화적 가치를 형성하게 된 과정 및 사실들과 관련된 역사적 관점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교육
(4) 문화가 지닌 혁신적 본질과 변화의 가능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
이와 같은 정의는 학습자 자신이 자라난 사회의 문화적 전통의 특성을 자각하도록 하고, 동시에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갖도록 하며, 문화사를 학습함으로써 문화가 담지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깨우치도록 하며, 문화가 지닌 혁신적 속성을 이해하자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위의 연구보고서가 내린 정의도 문화적 가치와 내용을 교육해야 하는 실천가의 입장에서 엄밀히 살펴보자면 상당히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만약 앞에서 제시한 문화교육의 이념이 가장 높은 교육목적으로 자리매김 된다면, 모든 교육 기관에서 다루고 있는 교과목 또는 교육내용을 문화교육의 범주 안에 놓을 수 있게 된다.
연구자는 이것을 ‘박물관식 문화교육의 개념’으로 파악하려 한다. 마치 우리가 박물관을 일컬어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이룩해 놓은 모든 문화적 산물들을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라 지칭하듯, 넓은 범주로 문화교육을 이해한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현행 교과목의 내용을 모두 포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R. S. 피터스(1965)가 적시했듯이 교과목에 담긴 교육내용은 “인류가 모든 역사를 통해 축적한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최고의 것만을 정선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자 압축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받아들여진다면, 지식교육의 대척점에 문화교육을 두고자 하는 관성처럼 굳어진 이분법적 사고 역시 쉽게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이 현행 고등학교에 개설된 7차 교육과정 상의 교과목을 다음과 같이 세분해서 제시하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1) 형식논리학과 수학: 논리학, 수학
(2) 자연과학: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3)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한 이해: 심리학, 사회, 역사
(4) 도덕적 판단: 윤리
(5) 심미적 경험: 미술, 음악
(6) 종교적 주장: 종교(일부 학교의 경우)
(7) 철학적 이해: 철학
이 가운데 직접적 연관성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사회의 문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만한 교과목은 거의 없다. 문화교육을 광범위한 개념으로 포섭함으로써 부딪힌 난점을 해소하고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협의의 영역을 설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하다. 즉, 문학 가운데 음운론과 같은 어학 부문을 제외하고 창작과 관련된 장르, 체육, 음악, 미술 교과 등을 묶어서 하나의 영역으로 분류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문화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지식으로부터 예술 교과를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다는 점, 특히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세계사적 지식이나 외국어 학습과의 연관성 등을 쉽게 단절시킬 수 없다는 점들이 지적된다.
1-3. 평생교육체제 안에서 문화교육의 결합 가능성과 의미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고를 잠정적으로 도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평생교육은 학교교육의 외곽에 존재하는 성인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의 영역에 국한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틀 아래 기획되어야 한다.
(2) 평생교육이 어떠한 이념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통일된 합의가 없으며 여러 가지 경합적 관계에 놓인 관점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3) 문화교육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 중심의 지식교육에 대비되는 개념이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인류가 축적한 문화유산의 내용과 가치를 학습자가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교육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4)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화교육의 개념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교육의 범주와 완전히 일치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일단 본고에서는 인문학 및 예술 교과와 관련된 영역으로 문화교육의 범주를 한정하여 적용시키기로 한다.
위의 가정을 따르자면 평생교육 체계를 통해 학습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프로그램들 가운데 상당수는 어떤 형식으로든 문화교육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교육’이라는 개념은 학교교육이 되었든 사회교육이 되었든 이미 전 생애에 걸친 학습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산물로부터 벗어난 교육이란 거의 존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연관성을 통해서도 뒷받침 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평생학습과 문화교육이 만나는 지점은 다양하게 목격된다. 교육부의 <평생교육백서>에 따르면 1998년 현재 도서관, 박물관, 문화원 및 구민회관 등 문화시설이 중심이 된 사회교육기관의 수가 전국적으로 13,277개나 되어 학원 및 일반 사회교육기관에 이어 평생학습 관련 기관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기관을 이용한 사용자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160여만 명에 이르러 평생교육 기관 이용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교육부: 1998).
그러나 이와 같은 양적 결과에 걸맞게 교육내용이 알차게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원래 문화교육은 ‘문화적 환경 체험 → 문화적 욕구 발생 → 문화 창조적 삶’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공공 문화기반 시설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은 천편일률적인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서예, 꽃꽂이, 데생 같은 취미 강좌와 민요, 풍물, 단소 강습과 같은 전통 문화 강좌, 사진, 악기 연주, 미술과 같은 예술문화 강좌, 스포츠댄스, 요가 같은 생활체육 강좌 등이 그것이다.(김태희: 1999)
한편 프랑스 지성사, 현대 미술의 이해, 문화와 글쓰기, 이성과 반이성의 철학사, 지역학의 이해, 테마로 보는 우리 역사 등 인문 사회 분야의 강좌들은 그 선택의 폭이 좁고, 신청자 수가 적어 폐강되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하다. 유사한 공예 프로그램이라 해도 조금만 교육내용이 심각해지면 수강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광명시평생학습원의 경우 2003년 3기 교육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짚풀공예>를 개강한 뒤 일주일 넘게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단 1명의 신청자만 나타나 폐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새끼를 꼬면서 작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생활사와 농경문화에 대한 전반적 관심이 요청되는 이 강좌의 교육목적에 대해 수강생들이 적절히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일한 문화교육 분야 안에서도 수강생들의 요구는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으며, 취미 실용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 종합적 교육프로그램의 수립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성인학습자들에게 걸맞은 교육내용 개발을 위해 어떠한 목적과 방향으로 문화교육의 내용을 조정하며, 어떻게 하면 전문 인력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교육 효과를 극대화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올바르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세훈(1999)은 “평생학습이 학습사회에서 삶의 전제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면 문화교육은 … 삶을 총체적이고 성찰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체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문화교육을 ①자신과 사회에 대한 감수성과 성찰적 이해의 태도 증진 ②변화하는 사회에 적응력 강화를 의미한다고 바라보면서 문화교육이 평생학습의 목표를 구현하는 구체적 방법론으로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내린 문화교육의 정의가 명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평생교육과 문화교육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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